2024년 11월 21일부터 25일까지 중국 동북 지역에서 4박 5일 동안 진행된 코리안드림 추계 역사 탐방은 또 하나의 한국 땅에서 한민족의 큰 꿈을 찾아 통일 조국 실현의 열망을 가슴에 가득 채운 여정이었다.
30년 전, 1994년 6월 어느 날 백두산에 올라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통일 기원제를 올린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북한대학생들과 북경에서 세계대학생평화세미나를 마친 직후였다. 당시 김영삼과 김일성의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었고, 통일이 곧 이루어질 것 같은 희망적인 시기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30여 년이 지난 지금, 조국의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남북의 대립과 갈등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우리 민족의 현실에 서글픈 마음이 크지만, 통일의 희망은 결코 버릴 수 없다. 이번 역사 탐방을 통해 만주 벌판을 호령했던 선조들의 얼과 혼을 느끼고, 강대한 나라를 꿈꾸었던 조상들의 열망을 따라가는 계기를 갖고 싶었다. 나아가 그동안 시민 운동을 통해 통일 조국 실현을 위해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왔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결의를 다지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첫날 연길 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두만강 국경 도시인 도문시로 향했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현급 도시인 도문은 두만강 유역의 교통 및 경제 활동의 요지이다. 동쪽으로는 훈춘, 서쪽으로는 연길과 용정, 북쪽으로는 왕청현과 가까우며, 남쪽으로는 두만강 너머 북한의 온성군과 인접해 있다.
도문시는 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역에서 북한을 살펴보았다. 민둥산과 김일성 초상들이 보이는 관공서와 민가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다리도 있었지만, 중국과 북한의 교류는 거의 없어 보였다. 다리 위를 오가는 차량들을 볼 수 없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분은 현재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교류가 활발하지 않다고 전했다.
두만강 너머 북한을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착잡했다. 북한 땅의 적막하고 음산한 기운은 내 감정을 압도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겠지만, 살아있다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자유롭고 생기 있는 새로운 삶을 열어주고 싶은 사명감이 밀려왔다.
우리 일행은 저녁 시간에 연변대학교 주변 지역을 방문했다. 연변대학교 정문 앞은 중국 젊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거나 개인 방송 등을 하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연길시의 밤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역동적이고 화려했다. 시내 곳곳 건물의 조명들은 서울보다도 더 화려해 보였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중국 전역에서 젊은 사람들이 한류 체험의 하나로 연길시를 방문한다고 한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한복을 빌려 입고 연변대학교 정문, 조선족 민속관 등을 방문하는 사진을 찍어 개인 SNS에 올리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과거 한동안 연변 지역 조선족 동포들이 한국으로 유입되어 연변 지역이 공동화되어 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최근 가서 본 모습은 생각과 딴 판이었다. 사실 연변 지역에서 조선족 동포가 한국으로 이주한 빈자리를 한족들이 유입되어 채웠다고 한다.
지금 연길시의 인구 분포는 과거와 다르게 한족이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연길시 모든 간판에는 한글 간판이 병기되어 있어 한국 분위기가 물씬 났다. 연길시가 한류 문화 유행의 직접적인 혜택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한민족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한껏 밀려왔다. 비록 다른 나라 땅이지만, 불사조 같은 한민족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것을 체감했다.
이튿날 우리 일행은 용정시로 향했다. 용정 지역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주요 지역이다. 일제 시대 저항 시인 윤동주 생가, 명동학교, 청산리 대첩 전적비, 독립운동가 대종교 3종사 묘역 등을 둘러보았다. 또한 선구자 노래에 나오는 용두레 우물도 방문했다. 비암산과 해란강을 지나며 그곳의 풍경을 감상했다.
일제 시대 조국을 찾겠다고 맹세하던 선구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청산리 전적비 현장에서 저 멀리 보이는 백야봉을 바라보며 김좌진 장군의 대한독립의 열정과 기개를 느낄 수 있었다. 청산리 대첩은 1920년 10월, 김좌진 장군이 지휘하는 독립군 부대가 독립군 토벌을 위해 간도로 출병한 일본군을 청산리 일대에서 10여 회의 전투 끝에 대파한 전투이다.
3일째 날은 백두산을 방문하는 날이다. 이번 역사 탐방에서 가장 설레고 기대되는 일정이기도 했다. 백두산은 《삼국유사》 고조선 시대에 인용된 고기(古記)에서 한민족의 발상지로 나타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득한 옛날, 하느님의 작은아들 환웅께서 여러 차례 인간 세계에 내려가고자 하자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의 뜻을 아시고 하계를 두루 살피시더니 태백(太伯) 곧 백두산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으로 여기시어, 곧 아드님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고 내려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께서는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 박달나무 아래에 내리시어 그곳을 신시(神市)라 하시니, 이분이 곧 환웅 천황이시다.” 이른바 단군신화라고 불리는 이 기사의 무대가 바로 백두산이다.
한민족 구성원에게 백두산은 단순한 산이 아닌 성산으로 의미를 가진다. 또한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수많은 소망이 쌓인 곳이다. 백두산을 방문하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정서는 보편적이다.
백두산 등정 전날 가이드는 우리 일행에게 불길한 말을 전했다. 당일 바람이 세게 불어 백두산 입산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가이드의 말에 마음이 불안했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백두산 천지를 꼭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30년 전 백두산 정상 부근에 안개가 가득하여 천지를 보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던 그 안타까운 기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백두산에 올라가는 당일 기상 상태는 최적이었다. 기온도 적당하고 바람도 거의 없었다. 천지에 올라서 보니 사방이 확 트여 있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고,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과 천지의 물이 어우러져 하나의 장관을 이루었다.
백두산 정상의 순백의 눈, 푸르른 하늘과 천지의 물이 어우러져 모든 이의 감탄을 자아냈다. 30년 만에 다가온 행운 같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 부근에 관광객으로 발을 디딜 틈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우리 일행은 "코리안 드림, 파이팅!"을 외치며 백두산 정상의 시공간을 각자의 추억으로 기억 속에 담았다.
4일째 날은 길림성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 유적지를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다. 중국 집안시는 북한과 압록강을 두고 인접해 있는 도시이다. 집안시는 압록강 중상류 지역에 위치해 있어 강폭이 그리 넓지 않았다. 우리 일행이 보트를 타고 압록강 중간쯤에 도달했을 때, 북한 접경 지역의 초소와 군인들도 육안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고구려 유적 중에는 광개토대왕비와 왕릉, 장군총, 환도산성, 국내성 유적지가 있었다. 그중에서 광개토대왕비는 꼭 보고 싶은 유적지 중 하나였다. 광개토대왕비는 광개토왕의 사후에 그의 공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아들인 장수왕이 부왕의 무덤 인근에 세웠다는 점 등을 감안하여 '광개토(대)왕릉비' 또는 '광개토왕비'로 불린다. 그 외에 '광개토왕'이라는 왕호 대신, 능비문에 보이는 묘호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을 줄여서 '호태왕비(好太王碑)'로 부르기도 한다.
광개토대왕비는 비문의 진위와 탁본의 해석에 따라 역사적 논쟁거리가 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일본 역사학자들에 의해 비문이 위조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삼국시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뒷받침한다는 임라경영설의 근거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비문에는 “널리 영토를 개척하였다〔廣開土境〕”라는 시호의 문구처럼, 생전에 활발한 군사 원정을 통해 주변으로 고구려의 세력을 크게 확장했던 광개토왕의 정복 사업에 대한 기록이 많다.
고구려 측면에서 기록된 비문인 만큼 다소 확대 과장된 면이 있지만, 그 내용 전반을 통해 광개토대왕의 대고구려를 향한 열망과 포부, 기개를 느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나 또한 한 때 대륙을 호령했던 우리 민족의 웅장한 기상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이번 역사 탐방은 과거의 탐방 경험과는 다른 특별한 감정을 선사했다. 현재와 과거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생각이 교차했고,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경험도 수반되었다. 강렬하게 역사 속 현장에 서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소환되었고, 선조들의 열망과 투쟁, 삶의 흔적들이 나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져 체화되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맛보았다.
그리고 내게 다시 한번 코리안드림 통일 실현 운동에 분투할 에너지를 더해주었다. 참으로 의미 있고 감사한 일정이었다. 끝으로,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역사 탐방 일정에 꼭 한 번 참여해 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